<어느 그만둔 교역자의 편지>

여기서 재림주, 선생님은 정명석 색마를 지칭합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믿었습니다.
믿고 존경하며, 선생님이 바로 재림주라고 확신했고 그대로 가르쳤습니다.
수백 수천의 학생들에게......

저는 선생님이 가난할 때부터 집에서 갖은 구박을 받아가며 선생님을 모셨고,

제 20대를 모두 선생님께 바치고 나 자신을 위해선 아무 것도 돌보지 않았습니다.

대학 때부터 30살까지 나의 청춘은 그렇게 선생님께 바쳐졌습니다.
한달 만원의 월급(?)에서 마지막 5만원의 월급을 끝으로
선생님께 버려질 때까지 저는 한치도 그 믿음이 흔들린 적 없었습니다.

그리고 버려진 후에도 오년 넘게 나는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될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때는 꼭 선생님께 필요한 사람이 되어서 만나겠다고....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당신을 위해 살기 위해 불쌍한 가족을 내팽개치고
내 건강을 해치고 굶기와 떠돌기를 밥 먹듯했습니다.

선생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너희들은 나라에서 월급주게 하겠다"고.
일만원의 월급을 처음으로 주며 그렇게 말씀하셨죠.
저는 제 일생을 선생님이 돌봐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깨지는 날이 올 줄이야.

내가 일을 못했거나, 실수를 했다면 나는 그 추궁을 달게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내게 질책하신 이유는 바로
"선생님의 애인인 한참 아래 ms 를 알아서 모시지 않았다는 것"
그 아이의 중상모략에 나를 혼내고, 탕감을 내리고 직위를 박탈하고
겨우 5만원의 월급을 안주시겠다고 하시며 '나가서 아르바이트해라'고
아랫사람을 통해 하명하셨습니다.

나는 83년, 그 가난한 섭리에 들어와 선생님께서 직장 가지 말라는 한마디 말씀에
가족을 버리고
선생님을 모시며 전국을 전전하며 일해 수백명의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그 아이는 불과 몇년, 그것도 선생님의 시중을 드는 일 밖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내가 하는 일보다 선생님을 곁에서 모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아니, 그렇다고 믿는 섭리사가 되었습니다.

그 애들이 하루종일 하는 일은, 빈둥빈둥 놀면서
선생님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어디 가실 때 주르르 따라다니며 분위기 맞추는 것.
그것이었지요. 사명이.

내가 하는 일이 정말 그 아이보다 못한 겁니까?

그리고 섭리에서 나이든 내가 샛파란 그 아이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그렇게도
흡족하셨습니까?
심지어 선생님은 전국 교역자가 모인 자리에서 섭리에서 늙은 우리들에게 야단치셨습니다.

너희들 곁에 있는 보고자들을 왜 우습게 생각하냐고.
"걔들은 바로 내 애인들이야"
우리는 모두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알아서 기지 못한 모모 지방 교역자들은 불명예스럽게 퇴진 당했습니다.
심지어 교역자에게 불만을 품은 일부 신도들은, 그 보고자에게 달라붙어서
교역자가 선생님께 찍혔다며 신도들을 충동질해서, 결국 공포를 느낀 신도들이

교역자를 멀리하고 마침내는 교역자가 교회를 떠나게 만들어 버렸지요.

선생님께는 MS 를 키우고 늘이느라 인생을 바친 교역자들보다,
그 교역자를 감시하고 일러바치는(이걸 '보고'라고 하지요) '보고자'들이 더
중요하십니까.

그것이 '섭리'입니까.

그것이 진정 섭리라면 그 섭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부모의 말이 다 옳습니까. 부모는 다 자식을 사랑합니까.
부모가 자식을 죽이기도 하고, 학대도 합니다.
신이 다 옳습니까. 신이 인간을 미치게 하고, 인간을 잘못되게 한다면 그 신은
더이상 나의 믿음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젠 난 압니다.
선생님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내가 선생님보다 더 옳다는 것을.
나는 선생님을 위해 택시 한번 타는 것도 두려워하며 살았지만,
선생님은 우리들이 지하철에서 땅콩을 판 돈으로 벤츠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 벤츠로 이인화와 신진과 이해조를 태우고 다니시며 자랑하셨지요.

자매를 다 안으시니 기분이 좋습니까?(인화와 해조)
그게 선생님의 섭리라면, 난 정말 인간답게 살아보겠습니다.

난 지금도 생각합니다.
내가 선생님께 면담을 들여보낸 여학생들이, 울며 자신이 선생님께 당한 것을
이야기하던 순간을.
물론 어떤 애는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이 내 속에 들어오셨어요" 하던 천진한 그 아이는,
메시아가 자신을 안아주었다는 사실에 그저 행복해 했습니다.
또 어떤 간사는 내게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내가 자신의 한참 위 선배라서 그랬겠지만.
"선생님이 정말 피곤해하시고 그러실 땐 어떻게 잠자리를 해드려야 해요?"
그리고 자신이 몇회, 어떻게 선생님과 섹스를 했는지를 적어서 제게 제출했죠.



내 밑의 학생이, 내게 자신이 처음 선생님과 관계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얼굴을 발그레하니 붉히며 "내 첫 순결을...."하며 자랑스러워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사정은 밖에다 하잖아요?" 하던 그 천진함을.

내 안에 무너져가는 것들과 싸우며, 점차 내 말씀은 힘을 잃어갔고,
더이상 바쳐진 세월 때문에 선생님곁에 머무는 것이 힘들었을 때,
저는 빈손으로 그곳을 나왔습니다.
1원도 없는 빈손.

나는 이제 교회도 나가지 않습니다.
이제 어느 종교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믿는 것은 '자기 자신'
그리고 '가족'
그리고 '인간'

인간은 신보다 위대하며,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신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자존을 짖밟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음을.

어떻게 당신과 몇년간 잠자리를 같이 한 여자를, 남신도에게 시집 보내면서 "영광스러워하
라"고
할 수 있는지.
"다 키워서 보내주는데 왜 그러냐"고 하신다면,
선생님이 키우는 것은 성적으로 발달하고 영악해지는 것입니까.
물론 그렇겠지요.
선생님과 같이 있는 애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워지고 영악해지지도.
그 많은 본부팀 안에서 선생님과 그날 밤 잠자리를 하려면 안그렇겠습니까.

이제 일본, 대만 등등에도 본부팀이 생겼으니,
국제적 망신이 될까봐 겁납니다.
그쪽에서 들고 일어나면 우리나라가 뭐가 되겠습니까.

여인의 선택이 미모에 관련이 깊다면, 못생긴 여자는 저주받은 것입니까?
그럼 선생님께서 성형수술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못생긴 애들이 벌어다준 돈으로 잠자리를 같이 한 애들의 옷을 수십벌씩 사주며,
선생님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들의 물주이고 생명줄임을 과시하시지만,
남은 우리는 어떡합니까?
오죽하면 여 MS 들이 선생님과 같이 자는 게 소원이고,
못생긴 교역자는 선생님과 같이 잘만한 아이를 전도해서 데리고 가는 게 소원이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어린 것을 속여서 선생님께 데리고 가서
어떡해서든 면담을 해서 섹스를 하고, 그래서 그 아이가 '보고자'가 되고
그 아이 덕에 내가 선생님께 칭찬 받는 것-- 그게 모든 교역자의 중요 업무이고
꿈입니다......

오직하면 안구현 목사가 "궁녀가 많아야 궁궐이 커진다"며
부산 교역자였던 김현숙 목사를 예를 들어 '중요한 깨달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줬겠습니까.


무엇보다도 그걸 먼저 깨달은 것은 우리들 여자 교역자들이고,
스스로 선생님께 인정 받고 사랑 받고 싶어서
적극 동조했습니다.......

우리는 그 애들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애들이 선생님께 짖밟혔고, 지금 나를 원망하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한마디 변명을 하겠습니다.

"나도 몰랐다"고.

아니, 눈치챘지만, 내 믿음이 그것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때-
나는 선생님께 버림 받았고, 나도 선생님을 버렸다고......

용서해라.
내가 전도한 000아.
나는 너로 인해 오늘밤 운다.
내가 떠나면서 너를 데리고 나가지 않은 것을 그땐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너를 만났던 그날 밤, 그 곳을 저주한다.
나를 용서해다오.
나를 신뢰하고 존경하던 그 눈빛. 그 말투. 그 목소리...
아아... 나의 사랑하는 후배......
이제 나를 용서하고, 너를 위한 인생을 살아다오..... 부탁한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섭리의 방식이라던 그 방식' 바로 <애인섭리>가 바로 선생님을 옭아매는
올무가 되었군요.
누구도 선생님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스스로 예수님이 시켜서 하는 일이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기쁘게 감당하십시오.
선생님.
언젠가 뵐 날이 있을 때,
피하지 않고 마주 대하며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그때 선생님은 제 얼굴을 똑바로 보실 수 있으십니까?